김훈의 소설 <하얼빈>은 안중근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그의 인간적인 고민과 신념을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 가톨릭 신자로서의 안중근이 어떻게 역사적 소명의식과 종교적 신념을 조화시키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 속의 안중근은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신앙 속에서 자신의 결단을 정당화하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안중근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는 신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었으며,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조국과 정의를 위한 것임을 확신합니다.
특히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거사를 앞두고 자신의 행위를 깊이 숙고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그의 결단이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철저한 신앙과 이성적 판단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훈의 서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안중근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사형을 앞두고도 동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족과 동료들에게 신앙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죠.
이는 그가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 신앙 속에서 자신의 희생을 의미화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내 죽음이 조국의 독립을 앞당길 수 있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말은 순교자의 자세를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안중근의 신앙이 단순한 평화주의로 귀결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신앙과 역사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조국의 독립이야말로 신의 뜻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이는 가톨릭이 강조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실현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비폭력을 이상으로 여기면서도, 현실에서는 행동을 통한 실천을 택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을 정의의 도구로 여깁니다.
김훈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을 글을 읽는 내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안중근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구체화되는지를 독자가 따라가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한 인간의 결단이 지닌 무게를 깊이 있게 잘 전달하였습니다.
<하얼빈>은 안중근을 단순한 영웅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과 결단의 과정을 면밀히 탐구함으로써 입체적인 인물로 형상화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신앙이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행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안중근의 신앙은 그를 흔들림 없는 존재로 만들었으며, 그의 선택은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신앙과 역사적 책임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